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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TV 맛집'은 조작됐다…다음엔 '가짜 의사'다" -[인터뷰] 방송사와 '유쾌한 맞짱' <트루맛쇼> 김재환 감독

by 맨도리쓰 2011. 6. 27.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626192306&section=04&t1=n 에서 펌

<트루맛쇼>가 개봉한 지 한 달. 개봉관을 잡기도 힘든 이 조그만 영화는 '공정성 1위'를 자처하는 대형 방송3사에 핵펀치를 꽂아 넣었다. '설마 사실일까' 하던 일들이 적나라하게 영화에서 드러났다. 음식점들은 1000만 원의 출연료를 브로커에게 건네고 방송에 '맛집'으로 포장돼 나온다.

그 결과는 영화의 내레이션처럼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로 드러난다. 어떤 가게는 익혀서는 안 되는
캐비어를 버젓이 불에 구워 삼겹살과 함께 내놓고(심지어 가짜 캐비어였다), 방송에서 위생불량으로 걸린 돈가스집은 곧바로 소문난 맛집으로 다른 방송사 교양프로에 소개된다. 돈만 주면, 어떤 식당이든 전국 최고의 명소가 된다. 이게 한주에 177개의 맛집, 1년으로 환산하면 무려 9229개의 식당이 '맛집'으로 지상파 3사 방송에 나오는 원리다. 맛집 프로그램에 맛은 없었다.

당황한 문화방송(MBC)이 영화의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으나 법정서 패했고, 한국방송공사(KBS)와 서울방송(SBS)에서는 맛집 프로그램이 줄어들었다는 소리도 들린다. 영화에서 나온 문장 그대로 '역지사지 퍼포먼스'가 일어난 것이다. 항상 '까기'만 하던 방송사가 구차한 돈벌이 수단을 폭로당했다.

그래서, 세상이 바뀌었나? 방송은 이제 좀 깨끗해졌나? 지난 23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의 영화제작사 비투이(B2E)프로덕션
사무실에서 단 한 달 만에 한국의 문제적 인물로 떠오른 김재환 <트루맛쇼> 감독을 만나 쌓아뒀던 질문들을 했다.

김 감독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관객수와 관계없이 논란을 일으킬 것이고, 방송사의 공격은 치열해질 것이며, 과연 <트루맛쇼>는 진짜 사실만 보여주느냐는 등의 논란 말이다. 그는 그러나 "이 상황(음식점이 방송 출연을 위해 돈을 쓰고, 그 결과 메뉴에도 없는 해괴한 음식이 등장하는 상황)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제작사, 방송사 노조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영화는 "리얼이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효과도 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간 공개되지 않은 영화 촬영의 에피소드도 일부 말했다. 하마터면 <트루맛쇼>가 벌인 기상천외한 '
몰카 쇼'는 한 MBC 피디의 재빠른 눈치로 인해 시작도 하기 전에 탄로날 뻔 했다. 영화를 위해 설립한 음식점 '테이스트'는 오픈 첫날 장사를 시작하지도 못할 뻔했다. 영화에 김인규 KBS 사장은 안 나오고, 김재철 MBC 사장만 나온 이유도 따로 있었다.

김 감독은 차기작에 대한 구상도 알려줬다. "만약 방송사들이 앞으로도 계속 돈 받고
의사를 출연시킨다면" 이제 '가짜 의사'를 방송에 출연시킬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새로운 '역지사지 퍼포먼스'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 감독과의 인터뷰 전문.
▲방송사 출신으로 방송사 까는 영화 만들기. 김재환 감독의 얘기를 듣다보면, 자연스레 영웅서사가 생각날 정도였다. ⓒ프레시안(최형락)

언론 관심도 없던 경영학도, MBA 준비하다 MBC로

프레시안 : 1996년 MBC PD로 입사해 방송 일을 시작했죠. MBC에선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었나요?

김재환 : 교양국에서 주로 가벼운 교양물 만들었어요. 한 5~6년 지속된 <와! e 멋진 세상> 만들었고…. 주로 파일럿 프로그램(새 프로그램) 많이 만들었어요. 새로 뭘 만드는 걸 좋아해서. 2001년 11월경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타임머신>을 2부까지 만든 후 이듬해 퇴사했고요.

교양국에 일했다고 하지만
연예인들도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주로 만들었어요. 제가 원체 가볍고 따듯한 프로그램을 좋아하거든요.

프레시안 : 제작사를 차린 다음에도 MBC와 일하나요?

김재환 : 네, 주로 그래요. 최근에는 <잡지왕>이란 프로가 기억에 남습니다. 서경석, 이윤석이 나와서 2미터 정도 되는 잡지를 실제로 넘기며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예전에는 우리 다 국회 도서관 가고 남산 도서관에 가서 방송 아이템 찾았어요. 지금도 도서관에 가면 고양이 애호가들의 잡지 등 별의별 잡지가 다 있어요. 이런 정보는 인터넷 아무리 뒤져도 안 나오죠. 그런데 요새는 피디와 방송작가들이 인터넷으로 아이템을 찾다보니 방송이 획일화된달까요? 3사 포맷이 다 비슷해지는 느낌이에요.

KBS와 2년 정도 같이 일했는데, 마음이 안 편하더라고요. MBC야 뭐 다들 서로 잘 아니까 일하기도 편하고 마음도 편한데, KBS는 좀 답답한 면이 있더군요.

프레시안 : 원래 피디를 지망한 건가요?

김재환 : 아~ 이 얘기하면 굉장히 재수없는데…. 하하. 인생이, 제가 정말 전혀 생각지도 않은 길로 왔어요. 제가 88학번인데요, MBC 입사 전에는 금융회사에서 일했어요. 외국계 종금사요. 대학 다닐 때도 경영학 전공했고요, 신방과 수업조차 한번 안 들어봤습니다.

신방과에 아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 친구들이 피디 지망생들이었고, 전 그때 이미 직장생활 할 때였고요. 그러니까 저는 그 친구들 만나서 술 사주는 게 일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공짜로 얻어먹느라 미안해서 괜히 그런 것 같은데, 당시 그 친구들이 저한테 '재환아, 너는 피디가 잘 맞을 거 같아'하면서 막 꼬셨어요. 그래서 제가 MBA 준비하다말고 혹해서 시험을 봐버렸죠. 그런데 덜컥 붙어버렸어요. (친구들은요?) 다 떨어졌고요. 하하하. MBA가 아니라 MBC로 인생 항로가 바뀌었죠.

프레시안 : 학생 때 사회운동, 언론개혁 이런 분야도 전혀 관심이 없었나요?

김재환 : 전혀요. 어떻게 친구들이랑 엮이다보니 이렇게 된 거예요. 전 투사 이미지로 보이는 것도 싫고, 실제로 아니에요. 그냥 노는 것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방송 쪽으로 넘어오지만 않았어도 머리숱이 이렇게 줄어들진 않았을 거예요.

김 감독은 시도때도 없이 웃었다. 웃음이 많은 것을 알고서야 <트루맛쇼>가 그렇게 재기발랄한 기획으로 영화화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머리숱이 줄어들었다'는 말에 서서히 <트루맛쇼>에 대한 질문을 이끌어낼 때가 됐다고 봤다. <트루맛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자,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트루맛쇼>는 직설적으로 '맛이 간' 한국의 방송을 까댄다. 김재환 감독은 겉보기엔 '재미'로 무장한 듯한 직구를 주구장창 던져댄다. ⓒB2E

방송제작 환경 변화가 지금의 맛집 프로그램 만들어

프레시안 : <트루맛쇼>가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가벼운 TV 교양프로그램 주제인 '맛집'을 갖고 방송의 어두운 제작과정을 보여줬단 점입니다. 왜 맛집이었나요?

김재환 : 제가 처음 영화화를 위해 관심을 가진 주제는 '미디어가 유포하는 이미지의 지배력'이었어요.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정치 뉴스를 보고, 정치행위를 하고, 그게 우리의 관점을 결정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우리는 날 것의 정치를 알진 못해요. 미디어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를 본 다음, 그 정보를 바탕으로 각자가 이미지를 형성하죠. 결국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에 따라서 우리의 정치 행위가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걸 영화화해서 관객에게 보여주자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사람이 평생을 통해 미디어의 영향을 받아왔는데, 어떻게 미디어를 보면서 성장하는 과정부터 정치적 행위를 결정하는 과정을 관객에게 보여줍니까.

그런데 맛집 프로그램이 '미디어가 유포하는 이미지의 지배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더라고요.
(맛집 프로그램을 제작한 적 있나요?) 없습니다. 다만 어떤 제작과정을 거치는 지는 알았죠. 돈과 권력이 아주 강력하게 개입됩니다.

프레시안 :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맛집 프로그램에 돈과 권력이 어떻게 개입되고, 시청자는 어떻게 이 '이미지'에 지배당한다는 겁니까?

김재환 : 방송 3사는 아주 강력한 지배력을 갖고 있죠. 누구나 TV를 보잖아요. 방송의 특징은 시각과 청각 매체란 점이죠. 그런데 '맛'은 미각요소입니다. 이 괴리에서 조작과 가짜의 가능성이 발생하는 거죠. 결국 지배력을 가진 방송사가 맛을 설명하는 대신, '맛'으로 포장된 무언가를 시각과 청각요소를 활용해서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중심(미각)은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겁니다. '이 사람의 요리가 훌륭하다'가 아니라 '이 식당 대박났다더라'는 방송꼭지가 나온 원인입니다.

프레시안 : 언제부터 이런 방송관행이 지배하기 시작했나요?

김재환 : 저는 <브이제이(VJ) 특공대>가 이 경쟁을 부추겼다고 봐요. 이 방송이 한 10년 됐는데, 한 때는 금요일 밤 10시대 시청률 20%를 넘겼었죠. 교양프로그램이 이 정도의 시청률을 낸겁니다. 어마어마하죠.

<VJ 특공대>에서 나오는 맛집의 화면을 상상해보세요. 방송은 짧은 시간 동안 맛집 대여섯 군데를 헤집고 다닙니다. 카메라는 굉장히 빠르게 샷을 바꾸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미처 생각할 여지도 주지 않은 채 이미지의 폭탄이 '파파파팍' 몰아치죠. 카메라가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마다 손님들은 커다란
액션을 취하면서 '맛있다'고 연발하죠.

그런데 이게 시청률이 나오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프로그램이 이걸 따라했습니다. 맛집 교양물의 비극이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제가 영화에서도 보여드렸지만, 캐비어 삼겹살은 정말 황당한 요리였어요. 영화를 보면서 그 방송 화면을 보면 말도 안 되는 사기임을 알 수 있죠? 그런데 이 방송을 본 시청자 누구도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VJ 특공대>의 시청률이 10%만 나와도 500만 명이 봤단 건데, 단 한 명의 시청자도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미디어가 던져주는 이미지의 지배력에 시청자들이 중독된 겁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강력한 힘의 원천이 '맛'이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맛을 좋아하니까요. 주제를 '맛'으로 잡지 않았다면 방송을 비판하는 영화에 대중이 이처럼 큰 관심을 갖지도 않았을 테고, 아마 개봉도 못했을 겁니다. 미디어 감시영화의 소재로 맛을 택한데는 전략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저도 영화를 보면서 '내가 좋아하던 프로그램이 이런 식으로 조작된 거구나'하는 황당한 느낌이 뒤늦게 들더군요. 역시 감독 말씀대로 영화를 보면서는 '어떻게 저런 뻔한 조작을 모르고 볼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고요.

그런데 한발 물러서 생각해보면, 신문에 광고성 기사들이 채워집니다. 기업의 제품소개 기사,
부동산 기사의 대부분은 사실 기사라기보단 광고죠. 미디어의 자본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이런 일이 발생했고요. 결국 TV의 맛집 프로그램이 그런 식으로 변한데는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현실적 이유도 있지 않을까요?

김재환 : 협찬이라는 '블랙 마켓'이 굉장히 커요. 그리고 취약한 매체일수록 협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고요. 정상적으로 광고매출을 올리기 힘드니 그렇게 되는 거죠. 케이블 방송은 방송3사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심각하게 영업하고 다니는 곳이 많습니다. 방송3사도 이제 안정적인 이익을 확보할 수 없는 시대가 됐으니 더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요.

프레시안 : 방송 제작의 외주화가 갈수록 더 심해져서 그렇게 된 건 아닐까요? KBS는 경영혁신 비전을 발표하면서 인력을 대폭 축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곧 방송의 외주화를 더 강화하겠다는 선언이죠.

김재환 : 분명히 그런 점이 있습니다. 우리 방송사 체제를 좀 보죠. 회사에 노조가 있습니다. 만약 회사에서 '경영환경이 어려워졌으니 제작비를 조금밖에 못 주겠다. 나머지는 전부 협찬을 받아서 만들어라'고 하면 노조가 어떻게 하겠어요? 강하게 반발하겠죠. 그런데 외주제작 시스템을 강화하면 이런 반발이 없습니다. 까라면 까는 거죠.

제가 회사를
창업한 지 10년째인데, 그간 제작단위 비용은 상승했는데 제작비는 오히려 더 떨어졌어요. 예전에 2500만 원에 만들어라고 한 방송단가가 지금은 1500만 원대로 떨어진 식입니다. 이런 방송이 뭘로 채워질까요?

예를 들어보죠. SBS의 <생방송 투데이>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광고가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니 방송사가 500만 원도 안 되는 제작비를 주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라고 제작사를 압박했어요. 제작사는 결국 그 제작비를 받고 방송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그 콘텐츠가 어떤 수준일 것 같아요? 광고로 가득찹니다. 검증도 안 된 온갖 희한한 프로그램이 들어오죠.

당시 같은 시간대 MBC의 <
화제집중>은 광고가 안 붙으니 결국 재방송을 틀었습니다. 시청자들의 비난이 폭주했죠. 그런데 동시간대에 KBS와 SBS는 방송이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두 회사가 제작비를 더 쓰는 회사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블랙 마켓을 적극 활용해서 방송을 만든 거죠.

풍선 효과인데, 제작여건이 악화돼서 이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팽창합니다. 우리는 맛집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방송제작의 어두운 이면을 봤습니다.
▲한번의 예외가 관행을 낳는다. 관행은 예외 아닌 것을 예외로 만든다. 그 사이에 선과 악이 뒤바뀐다. 우리가 '관행'이라 부르는 모든 것들의 시작은 예외에서 비롯됐다. <트루맛쇼>는 이제 굳어진 '관행'으로 5천만이 익숙한 정경의 한 토막을 영화로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프레시안(최형락)

<트루맛쇼>에 김재철 사장만 출연(?)한 이유

프레시안 : 영화를 둘러싼 논란 중에 이해가 잘 안 가는 대목이 있습니다. 법정으로 <트루먼쇼>를 끌고간 회사가 MBC밖에 없단 말이죠. 영화를 보면 방송3사가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나오는데, 왜 유독 MBC만 길길이 날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재환 : 블랙 마켓, 즉 협찬금을 제작사만 받는 게 아닙니다. KBS와 SBS는 본사에 상당액이 들어갔다가 다시 제작사로 나옵니다. 이 대형 방송사들이 제작비를 줄이고도 수익이 나는데 재미를 들이다보니 협찬금마저 자기들이 관리하겠다고 나선 거죠.

그런데 만약 KBS와 SBS가 법정으로 <트루맛쇼>를 끌고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신들이 관리하던 블랙 마켓이 다 드러날 겁니다. 고정 프로그램마다 정보프로그램 관련 꼭지가 하나씩만 있어도 그 규모가 엄청날걸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겁니다. 만약 법정에서 이 돈 다 돌려주라고 판결 내려버리면 방송사 큰일나죠. 그러니 법정으로 안 들어가는 겁니다. 기자들이 물어봐도 관계자들 다 노 코멘트 하는 이유 아닐까요?

MBC는 매커니즘이 두 방송사와는 조금 달라요. 제작비를 적게 주되, 홍보대행사가 식당과 출연하는 스타까지 전부 다 섭외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MBC는 그냥 홍보대행사와 제작사를 맺어주고, 스타의 출연료를 홍보대행사가 지급하도록 하죠. 그러니 결국 홍보대행사로 돈이 들어가고, 아마도 그 돈의 일부는 제작사로 흘러갈 수도 있었겠죠. 그 돈은 MBC를 한번 거슬러 다시 돌아가진 않죠.

제가 법정 싸움 초기에는 블로그에 관련 내용을 올리면서, 홍보대행사 측의 실명까지 전부 다 공개해버릴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물론 홍보대행사들이 저런 식으로 방송을 만들면 안 되지만, 솔직히 마음이 약해져서 가만히 있었어요. 그 사람들(홍보대행사)이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서.

프레시안 : 예전 'MBC 식구'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저런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군요?

김재환 : 그것보다 김재철 사장의 존재가 더 클 거에요. 영화를 보면 김 사장이 출연하시죠. 그런데 지금 김 사장 밑에 있는 심복들이 길길이 날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주군이 능멸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이건 언론에 처음 말씀드리는 건데…. 원래는 <트루맛쇼>에 KBS와 SBS의 시무식도 전부 찍을 생각이었어요. 그쪽 사장님들이 생각하시는 미래의 콘텐츠 산업 구상은 뭔지, 앞으로의 경영 계획을 전부 듣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KBS와 SBS는 시무식을 사내 스튜디오에서 하더라고요. 반면 김재철 사장은 국악을 사랑하는 분이어서 남산국악당에서 시무식을 하시더군요.

이게 어떤 차이가 있냐면, KBS·SBS의 시무식을 촬영하면 주거침입죄로 걸립니다. 사유지에 들어와서 함부로 방송을 찍었다는 거죠. 그래서 사람을 거기 보내놓고도 영화에 못 썼습니다.

말씀드린 김에 아쉬운 점 몇 가지 더 말씀드리죠. 원래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찍을 생각이었어요. 미디어 산업에 관련된 영화니까 그 분의 코멘트를 꼭 받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우리 카메라팀을 지속적으로 붙였는데, 끝내 쓸만한 말씀을 한 마디도 안하더라고요. 국회에 들어가서 찍으려 하니 허가를 안 내줬습니다. 결국 국회방송에 테이프를 사겠다고 했는데 안 팔더군요. 그래서 그분(최 위원장)의 장면도 못 썼습니다.

프레시안 : 시무식 하나 하려고 그런데까지 찾아가는 게 좀 수고스러워보입니다만, 결과적으로 김 사장의 취향 덕분에 <트루맛쇼>에 풍성함이 더해진거군요?

김재환 : 아~김재철 사장이 아주 특이한 분입니다. 아주 특이해요. 그분이 기차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MBC 직원들이 온통 '한국철도 사장 가는 것 아닌가'는 말을 할 정도였어요. 작년 말에는 MBC에서 갑자기 20만 원 한도에서 KTX를 타고 어디든 가라고 피디들 연수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피디들이 다 부산 아쿠아리움에서 만났답니다. 갈 데가 없으니까. (푸하하) KTX타고 돈 쓰라는 거죠.

그 분이 기차를 사랑하고 국악을 사랑하고 장애인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MBC에서 우스갯소리로 '기차 안에서 장애인 모아놓고 국악공연 하면 무조건 주요시간에 편성될 것'이라는 농담까지 있습니다.

김재철 사장이 분명히 법정싸움 들어가기 전에 심복들에게 물어봤을 겁니다. '니네 문제 있어, 없어?'하고요. 그러니 그분들은 문제가 있든 없든 '없습니다' 할 수밖에 없죠. 김 사장은 '가처분해' 이렇게 지시했을 겁니다. (김재철 사장이) 아주 단순한 분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분이에요. 가처분 소송으로 인해 MBC에 드리울 암운을 전혀 걱정 안하시는 분입니다.


'리얼이냐 아니냐'가 문제 아니다. 의심하라

<트루맛쇼> 개봉 후 당연히 영화 관련 기사도 넘쳐났다. 진중권 문화평론가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진중권 씨는 <씨네21>에 귄터 안더스의 표현을 빌려 "<트루맛쇼>의 묘미는 이 리얼리티쇼의 포맷을 빌렸다는 데 있을 것이다. … <트루맛쇼>가 맛집 방송의 이면에 감추어진 '사실'을 보여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도 결국 하나의 허구라는 '사실'은 은폐해버린다. 다큐멘터리 역시 편집을 통해 '극화'를 하며, 전달할 메시지의 '서사'를 창작한다. 가령 '사실을 왜곡하는 방송이 있고, 거기에 속는 시청자가 있다. 권력이 된 방송을 공격하는 것은 위험하나, 고난을 무릅쓰고 진실을 폭로하는 감독이 있다.' 아주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다큐멘터리의 영웅서사다."라고 썼다.

<트루맛쇼> 역시 '손님'을 섭외해 허구의 맛집을 만들고 허구의 맛을 창조한 다음 시청자를 농락하는 방송사 '맛집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은, 실제하지 않는 허구에 대한 기록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진 씨는 "<트루맛쇼>를 그저 '폭로'저널리즘의 관점에서 논하는 것은 실은 영화에 미안한 일"이라며 영화의 리얼리티에 대한 두 철학자의 논리를 독자에게 설명하는 도구로서 <트루맛쇼>를 활용했다고 충분히 설명했다. 그러나 진 씨의 글은 분명 곱씹어 볼 만하다. <트루맛쇼>는 과연 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김 감독에게 물어봤다.

▲김재환 감독은 "우리가 진실이다"라고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의심하라"고 외치고 "당신들의 천박한 미각이 오늘의 맛집 프로그램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B2E

프레시안 : 진중권 씨는 <트루맛쇼> 역시 편집을 통해 사실을 은폐한, 또 다른 <트루먼쇼>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방송 제작관행을 촬영해 청중에게 보여주며 '이것이야말로 사실이었다'고 관객에게 '가공된 사실'을 강요할 수 있다는 거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재환 : 전 영화의 의의를 좀 다른 부분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제가 영화에서 주장한 건 '합리적으로 의심하라'는 겁니다.

다만 중요한 지적을 하셨기에 제 생각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리얼'은 없습니다. 인터뷰한다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사람의 평소 모습은 사라집니다.
(지금 감독께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데, 감독의 지금 모습 또한 마찬가지인가요?) 당연하죠. 저 평소에는 이렇게 진지하지 않습니다.

과연 <트루맛쇼>는 리얼하냐 리얼하지 않느냐, <트루맛쇼>만 리얼하고 나머지는 거짓이냐. 이런 데 초점을 맞추는 건 제가 원한 논쟁이 아닙니다.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가 가상의 세계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해보자는 게 <트루맛쇼>의 제작 의도입니다.

과연 우리가 '리얼하다'고 믿는 게 정말 사실일까요. 맛의 프레임으로 이를 보여줬지만, 정치·경제·사회·미디어에 대해서도 합리적 의심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데 대한 문제제기입니다.

프레시안 : 결국 <트루먼쇼>의 구도와도 비슷한데요. 처음 영화 구상 당시부터 <트루먼쇼>를 염두에 두셨나요?

김재환 : 당연합니다. 처음 만들 때부터 <트루먼쇼>를 생각했습니다. 영화관에서 관객이 일어날 때 <트루먼쇼>를 보면서 가졌던 생각을 다시 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트루먼쇼>를 보면 트루먼이 진실이라고 믿는, 크리스토퍼 피디가 만든 가상 세계가 나옵니다. <트루맛쇼>에서도 시청자가 진실이라고 믿지만, 실은 제작사와 방송사가 온갖 가짜를
동원해서 만든 '맛집 방송'이라는 가상 세계가 나오죠. 다만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더 만들었습니다. 이 가상 세계로 시청자를 속이는 세계를 또 촬영하는, 우리가 만든 식당이라는 또 다른 가상세계가 있죠. 결국 방송사가 <트루맛쇼>에서는 트루먼의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영화에서 프랑스인
셰프가 하는 말이 제 영화의 주제의식이기도 합니다. "유어 아이즈 아 더 비기스트 라이어즈(You're eyes are the biggist liars)." 당신 눈이 가장 큰 거짓말쟁이입니다. 우리가 리얼이라 믿는 게 과연 리얼일까요? <트루맛쇼>는 '리얼은 없다'는 선언입니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건 스퍼록 감독이 <
슈퍼 사이즈 미>에서 한 달 동안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 게 과연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자신이 영화를 위해 설정한 세계죠. 이걸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감독이 의도한 바를 관객이 공감한다면 그걸로 된 겁니다.

시청자 책임은 없나

프레시안 :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의도를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식문화가 나쁘다. 우리 입맛이 이 정도 수준이라 가짜 맛집이 넘친다"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인터뷰 장면입니다. 여러번, 같은 말이 반복돼서 영화에 나옵니다. 혹시 감독이 관객에게 '당신들도 이런 상황에 책임이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대목을 늘린 것 아닙니까?

김재환 : 우리가 그 동안 공급자만 나쁘다고 얘길 해 왔는데, 이제 그럴 수 없는 시대예요. 일인미디어의 확대재생산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방송이 가짜 맛집을 알려주면 블로거들이 대거 인터넷에서 그걸 다시 소개하죠. 심지어 맛집을 소개하는 전문 블로거도 있습니다. 고전적 미디어에서 던져주는 이미지를 무비판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일인미디어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이 황교익 선생의 말에서 드러난 '시청자가 천박하다'는 내용이죠.

맛이 없는 맛집을 띄워준 건 결국
소비자입니다. '방송사가 나쁘고 내 책임은 없다'고 하는 순간, 제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의 능동성, 적극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면피하는 거죠. 이러면 안 됩니다. 시청자도 충분한 책임감을 갖고 행동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이처럼 논란이 되는 상황을 예상하셨나요?

김재환 : 개봉만 되면 논란이 크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영화에서 쓴 자막이 '역지사지 퍼포먼스, 그들의 방식으로 그들을 촬영하기'였잖아요? 영화 외에도 역지사지 퍼포먼스가 무수히 드러날 걸로 봤습니다.

가처분 소송이니 해서 시끄럽지만, 결국 가장 큰 역지사지는 이런 게 아닌가 싶어요. 그간 미디어계의 슈퍼 파워인 방송3사는 제대로 된 공격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정치적 공격은 받아봤지만, 그들이 가진 권력을 활용해 돈 버는 방식, 그들이 공급하는 콘텐츠의 정당성을 갖고 공격을 당한 적은 없죠.

그런데 <트루맛쇼>를 계기로 늘 공격하던 방송사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늘 '받아 먹어'라고만 하던 매스미디어가 일종의 작은 미디어가 쏜 직격탄에 맞은 거죠. <트루맛쇼> 이후에도 역할 바꾸기 게임을 계속 할 생각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이 영화 상영관이 너무 부족합니다. 개봉관수도 적고 상영시간도 얼마 안 됩니다. 보기가 힘들어요.

김재환 : 방송3사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죠. 전국의 그 많은 CGV에 딱 하나 열리더군요. 초거대기업도 방송3사의 눈치를 보느라 개봉을 못합니다. 처음 CGV 실무자랑 얘길 해서 열기로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홍보담당자가 이 소식을 듣고는 '이거 열면 큰일난다'해서 못 열었어요. CJ엔터가 투자배급도 하는데, 이거 열었다가 우리 영화는 어떡할 거냐는 거죠. 방송사에서 대기업 때리기 뉴스를 내보낼 수도 있고, 무엇보다 CJ엔터가 투자한 영화를 방송사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안 내보내면 큰일난다는 거죠. (그런 프로가 영화 스코어에 영향 많이 미치나요?) 엄청납니다. 몇분짜리 나가느냐에 따라 영화 성적이 갈려요.

방송사 노조는 입 열라

영화를 보고 난 후 방송사를 출입하는 선배 기자에게 물어봤다. "방송사 노조들은 <트루맛쇼> 보고 뭐라고 하나요?"라고. 대답은 간단했다. "노 코멘트." 방송사 노조들이 유독 조용하다. 속된 말로 '쪽팔려서'라도 한 마디 할 법한데, 조용하다. 왜 이럴까?

프레시안 : 방송사 노조가 조용합니다.

▲"방송사 노조는 항상 침묵해 왔다." ⓒ프레시안(최형락)
김재환 : 가장 아픈 부분입니다. 시민들이 방송사에 가진 이미지는 그간 정치 투쟁 상황에서 노조가 보여 온 선명한 입장표면이거든요. 노조는 (경영진과 달리) 무척 선명하고 올바른 길을 걸을 것이라고 대중들이 여겨왔어요.

그런데 항상 돈과 관련된 부분, 방송사의 돈 버는 방식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노조도 회사와 궤를 같이 해 왔어요.
저작권, 외주제작 시스템, 블랙 마켓 등요. 방송사가 구조적으로 콘텐츠 거래의 불합리한 상황을 세팅했고, 노조도 용인했죠. 항상 침묵했어요.

프레시안 : 노조가 해야 할 일을 안 했다?

김재환 : 그렇죠. 방송사가 늘 상생을 외치지만, 가장 상생 못하는 곳이 방송사에요. 정치적으로 균형추 역할을 할 것이라는 노조의 이미지가 방송사가 돈 버는 상황에서 보여주는 비도덕적인 부분을 가리고 있어요.

지금도 노조가 침묵하고 있는데, 정말 '노동조합'이라면 그래선 안 돼요. 노조가 단순히 자기들 이익만 챙기자고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노동자 권익을 키우자고 있는 곳인데, 그러면 외주제작 시스템 때문에 제작사에서 열악한 근무환경에 노출된 피디들의 미래에 대한 문제도 같이 고민해야 맞는 겁니다. 방송 3사에 입사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죠. 그러면 나머지는 제작사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할 것인가, 그렇게 한다면 들어가자마자 양심을 팔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프레시안 : <트루맛쇼>에서 실험에 참가한 언론사 지망 학생들도 그런 얘길 하죠.

김재환 : 언론사 지망생들도 이젠 알아요. '지상파 오어 나싱'이라는 걸요. 지상파에 못 가면 제작사로 안 가고 일반기업으로 갑니다. 이런 상황을 묵인한 게 노조예요. 연말 성과급 더 받으려고 '회사 이익을 줄이고 양심을 팔지 않는 구조를 만들자'는 말을 안 한 거죠.

프레시안 : 그런데 김 감독은 결국 방송사에 피해를 보는 제작사의 대표입니다. 제작사가 방송에 피해를 본다, 이거도 결국은 제작사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소리로 보일 수 있을 텐데요?

김재환 : 제작사와 이 업계의 피디, 작가들은 구분해야죠. 제작사는 그렇지 않지만, 업계의 피디, 작가들은 약자일 수 있어요.

제작사에 제가 가진 불만은 이겁니다. <트루맛쇼>가 나간 다음 온통 '<트루맛쇼>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세요. 그런데 웃긴 건, 돈 받고 맛집 내보내는 일을 관둘 생각은 안한다는 거죠. 이 문제는 기정사실화시켜놓고 '블랙 마켓을 통해 돈 벌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논리로 방송사와 맞서 싸우지 않으려 하면서 힘들다고만 하면 안 돼요.

작년에 <VJ 특공대>에서 방송 조작한 제작사를 자르겠다고 했지만 안 잘랐어요. 지난 십여년 간 수많은 블랙 마켓을 방송사와 제작사가 공유해왔습니다. <VJ 특공대>가 만든 가짜 메뉴만 해도 수없이 많죠. 십여년 간 조작의 역사, 협찬의 역사를 제작사도 방송사와 공유했습니다. 공범끼리 자르고 말고 할 수 없죠.

얼마 전 <생방송 투데이>에서 정리됐다는 제작사 사장이 '우리 힘들다'고 약자마케팅을 하는데, 정말 웃겨죠.
모두 다 이 상황은 그대로 두자고 얘길 합니다. 이래선 안 되죠. 제작사들이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일어나야 맞는 거죠. 제작사가 힘든 상황은 기정사실화 시켜놓고, 바른 소리 하는 사람보고 '왜 우리 괴롭히냐'고 하면 안 됩니다.

그간 제작사들이 저작권 확보, 제작비 현실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죠. <트루맛쇼>를 통해서 공개적인 논의의 장이 열렸고, 대중의 분노도 일어났어요. 그러면 이걸 바꿔가면 됩니다. 그런데 제작사들은 단 한 번도 안 모였습니다.

프레시안 : 이런 상황에서 종편 방송 출범한다면, 불보듯 뻔하겠네요.

김재환 : 어떤 콘텐츠가 채워질까요? 과연 종편이 방송 3사보다 더 많은 제작비를 쓸 수 있을까요? 과연 착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시청자들이 그런 것 봐주면 결국 다 <VJ 특공대>처럼 가게 되는 거죠.

잘 아는 종편쪽 피디 한분이 그러시더군요. '아, 우리도 <VJ 특공대> 포맷으로 가려고 했는데, (트루맛쇼 때문에) 큰일났다'고요. 요샌 저한테 연락도 안 하시더군요.
(푸하하)



<트루맛쇼>의 몰카 식당이 들킬뻔한 사연

프레시안 : <트루맛쇼>로 수익 좀 내셨나요?

김재환 : 계산기를 두드려 봤더니 영화 자체로 손익분기점 맞추려면 16만 명 들어야 하더군요. 이번 주말(25일)까지 1만 명 들어옵니다.

프레시안 : 앞으로도 미디어 비판 다큐를 두 편 정도 더 준비했다고 들었는데요?

김재환 : 힘들어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다만 내년에는 무조건 하나 더 만듭니다.

프레시안 : 다음 영화가 뭔지 알 수 있나요?

김재환 : 지금 돈 내고 방송에 출연하는 의사들이 많습니다. 음식 관련 코너에 의사 인터뷰 15~20초가량 들어가게 하고, 한달에 4회 출연하게 하고, 이런 식으로 조건을 붙여서 돈 얼마씩 내고 출연하는 의사가 많습니다. 신문에도 돈 내고 칼럼 씁니다. <생방송 투데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건강백세> 다 마찬가지예요.

요새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는데요, 만약 앞으로도 의사가 돈 내는 관행이 안 사라지면 저희가 가짜 의사 투입할 겁니다. 의사 여러분, 돈 내고 방송 나가지 마세요. 그러면 <트루의쇼>에 나오실 수 있습니다. 하하.
▲방송은 힘이 세다. 방송의 힘을 키운 건 어쩌면 시청자의 욕망인지도 모른다. ⓒB2E

프레시안 : 이렇게 계속 싸우느라 에너지 소진하고, 돈 못 벌고, 방송사와 관계도 틀어지고. 아주 안 좋은 상황 아닙니까?

김재환 : 중요한 건 제가 멀쩡해야 한다는 겁니다. 요새 저희 사무실로 자신이 찍은 다큐를 들고 와서 코멘트해달라는 분들이 많아요. 그 동안 표현을 하고 싶어도 표현의 장을 못 찾으신 분들이 폭발하는 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꼭 살아남아야 하고, 회사가 꼭 살아남아야 합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다른 분들도 저처럼 권력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프로를 또 만드시죠.

프레시안 : 가족들은 반대 안 했나요?

김재환 : 와이프가 반대 했어요. '왜 네가 해야 하냐'고요. 그런데 제가 '무조건 해야겠다. 이유가 이러이러하다'고 설명해주니 이해하더군요.

영화를 위해 일산에 식당을 빌린 다음 한동안 장사를 했는데요, 와이프도 와서 김밥 말았어요.

프레시안 : 장사는 잘 되셨나요?

김재환 : 말도 마세요. 가게 오픈 첫날에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오기로 했다가 모두 펑크를 낸겁니다. 첫날부터 완전 엉망이었어요. 우리 회사 사람들이 두명씩 조 짜서 가게에서 서빙하고 김밥 말고 설거지 했어요.

식재료 사는 것부터 해서, 식당업 정말 힘들더군요. 일하면서 느낀 게, 정말 양심을 지켜가면서 식당으로 돈 벌기가 힘들다는 거였어요.

프레시안 : 지금은요?

김재환 : 지금은 커피 팝니다. 바리스타 두 명을 뒀는데, 하루 두잔만 판 적도 있답니다. 주요 고객이 접니다. 다음달 중순이면 계약이 끝납니다.

프레시안 : 일산 웨스턴돔이 MBC 바로 앞인데요.

김재환 : 소송 때 심지어 MBC에서는 '우리 엿 먹이려고 회사 앞에 차린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어요.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식당을 차리려고 컨설팅을 맡겼는데, 홍대, 이대, 웨스턴돔 이렇게 세 군데를 추천하시더라고요. 그런데 홍대와 이대는 너무 비싸서 도저히 못 들어갈 것 같아서 웨스턴돔으로 갔습니다.

촬영준비를 할 때 정말 가슴 철렁한 순간이 있었어요. 김유곤 피디라고, <일밤>에서 몰래카메라 오래 하다가 요새는 <나는 가수다>하는 후배가 있어요. 제 대학 후배이기도 하고요. 이 친구가 어느 날 우리 식당에 와서 밥을 먹는데 '형, 이거 몰래카메라 하려고 세트 만든 거 아니에요? 아무리 봐도 몰래카메라 같은데?' 이러더라고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죠. '밥 먹어라'하면서 넘어가긴 했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프레시안 : 영화 나온 다음에는 뭐라고 하던가요?

김재환 : 요새 <나가수> 때문에 많이 힘들다고 아직 못 봤대요. 연락도 없어서 제가 화가 나서 '형님 죽겠는데 문자 한 통 없냐'고 연락했더니 작가들이랑 같이 보러 가겠다고 하더군요. 근데 이거 나가면 좀 그럴텐데…, 그냥 냅시다. 하하하.
 

/이대희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